기형도, 聖誕木(성탄목)- 겨울 版畵(판화) 3
2018. 3. 6.

크리스마스 트리는 아름답다. 
그것뿐이다.

오늘은 왜 자꾸만 기침이 날까. 
내 몸은 얼음으로 꽉 찬 모양이야 
방안이 너무 어두워 
한달 내내 숲에 눈이 퍼부었던 
저 달력은 어찌나 참을성이 많았던지 
바로 뒤의 바람벽을 자꾸 잊곤 했어 
성냥불을 긋지 않으려 했는데 
정말이야, 난 참으려 애썼어 
어느새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었네 
그래, 고향에 가고 싶어 
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지만 
사과나무는 나를 사로잡았어 
그 옆에 은박지 같은 예배당이 있었지 
틀린 기억이어도 좋아 
멀고 먼 길 한가운데 
알아? 얼음가루 꽉 찬 바다야 
이 작은 성냥불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어. 
어머니는 나보고 
소다가루를 좀 먹으라셔 
어디선가 통통 기타 소리가 들려 
방금 문을 연 촛불가게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 
참, 그런데 
오늘은 왜 아까부터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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